관계

침묵이 만드는 연결

박지은62025-10-18
침묵이 만드는 연결

"말이 없어도, 함께 있습니다."

친구와 남산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부터 둘 다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냥 나란히 걸었습니다. 숲을 보고, 하늘을 보고, 가끔 눈이 마주치면 웃었습니다. 말이 없었지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도시에서의 만남은 대부분 말로 이루어집니다. 카페에서, 식당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듣습니다. 침묵은 어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빈틈없이 대화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숲은 다릅니다. 숲에서는 침묵이 자연스럽습니다. 새소리,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가 침묵을 채웁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이 느껴집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리듬으로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연결입니다.

한 번은 연인과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평소 우리는 할 말이 많은 사이였습니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침묵을 깨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없이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가끔 나무를 가리키거나, 새를 발견하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산하고 나서 연인이 말했습니다. "오늘 참 좋았어." 저도 그랬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깊은 시간을 함께한 느낌이었습니다. 말은 적었지만 더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숲이 가르쳐준 것은 이것입니다. 관계는 말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함께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것, 침묵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친밀감이라는 것.

가족과 하늘공원을 걸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부모님, 형제와 함께 억새밭을 걸었습니다. 평소 집에서는 TV를 보거나 각자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넓은 억새밭 사이를 걸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었습니다.

간혹 누군가 "저기 봐"라고 말하면 다 같이 그쪽을 보았습니다. "예쁘다"라는 짧은 말, "노을 진다"는 한마디. 그런 짧은 말들과 긴 침묵이 교차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숲은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줍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나눕니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말없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과 걷는 숲길은 특별합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숲이 주는 세 번째 힘입니다. 침묵을 통해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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