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가장 쉬운 명상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됩니다."
명상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추천하는 것은 숲을 걷는 것입니다. 걷기는 가장 쉬운 형태의 명상입니다.
양재천을 따라 걸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회사 일, 내일 할 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그런데 10분쯤 걷자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생각들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스스로 정리되고 사라졌습니다.
걷기 명상의 핵심은 발걸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느낌,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땅의 질감. 이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숲길은 걷기 명상을 하기에 더욱 좋습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 낙엽이 쌓인 길을 걸으면 발바닥 감각이 더 풍부해집니다. 울퉁불퉁한 길은 발의 작은 근육들을 깨우고, 자연스럽게 현재 순간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을 오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으며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들숨과 날숨, 발걸음의 리듬. 몸이 하나의 흐름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몸에서 땀이 나고, 마음은 맑아져 있었습니다.
걷기의 좋은 점은 운동 효과도 있다는 것입니다. 명상하면서 동시에 몸을 움직입니다.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근육이 풀립니다. 특히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활동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숲에서 20분만 걸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크게 낮아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 경험상으로도 그렇습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숲을 걸으면, 걷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상태가 됩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됩니다.
중요한 건 빨리 걷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걷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걷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어디에 가려고 걷는 게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습니다.
가끔 길동생태공원을 걸을 때는 아예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걷고 싶을 때까지 걷고, 쉬고 싶으면 쉽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걸을 때 비로소 진정한 휴식이 일어납니다.
숲길을 걸으며 저는 배웁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숲이 주는 두 번째 힘은 이것입니다.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