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숲에서 배운 호흡

이서연52025-10-05
숲에서 배운 호흡

"여기선, 숨이 깊어집니다."

서울숲 자작나무 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평소보다 심호흡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 발밑의 부드러운 흙길, 귓가를 스치는 바람.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천천히 만들었습니다.

도시에서의 호흡은 늘 얕고 빠릅니다. 지하철 안에서, 사무실 책상 앞에서, 우리는 거의 숨을 쉬는지조차 잊고 살아갑니다. 가슴 위쪽으로만 짧게 숨을 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숲에 들어서면 달라집니다. 몸이 먼저 압니다. 여기서는 천천히 숨 쉬어도 된다는 것을. 오히려 천천히 숨 쉬어야 한다는 것을. 깊게 들이마신 공기가 폐 아래까지 내려가고, 천천히 내쉬는 숨과 함께 어깨의 긴장이 풀립니다.

숲의 공기에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있어 실제로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숲이라는 공간 자체가, 나무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은 수십 년, 수백 년을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자랍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저 매일 조금씩, 햇빛과 물을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런 나무들 사이에 서 있으면, 우리도 모르게 그 리듬에 맞춰집니다.

한 번은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숲을 보고, 하늘을 보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숨을 쉬었습니다. 5분이었을까요, 10분이었을까요. 일어설 때 몸이 가벼웠습니다. 며칠 동안 짓눌려 있던 무언가가 풀린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불안할 때면 저는 숲을 떠올립니다. 당장 숲에 갈 수 없을 때에도, 숲에서 배운 호흡을 떠올립니다. 천천히, 깊게. 급하지 않게. 나무가 자라는 속도로. 그러면 조금 괜찮아집니다.

숲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빨리 걸으라고, 무언가를 성취하라고, 생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기 있으라고, 숨 쉬라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그것이 숲이 주는 첫 번째 힘입니다. 우리에게 다시 제대로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호흡#명상#치유#불안